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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자산

소토메의 시쓰 취락소토메의 시쓰 취락

(Ⅱ)잠복 기리시탄의 신앙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


Yuko 그리스도교에서 유래된 성화상을 몰래 숭상함으로써 신앙을 실천한 취락.

‘소토메의 시쓰 취락’은 잠복 기리시탄이 무엇을 숭상함으로써 신앙을 실천했는지를 나타내는 4개 취락 중의 하나다. 금교기 시쓰 취락의 잠복 기리시탄은 자신들의 신앙을 숨기면서 그리스도교 유래의 성화상을 은밀하게 숭상하고, 교리서나 교회력을 바탕으로 신앙을 실천했다. 또한 이 지역에서 많은 잠복 기리시탄이 고토 열도 등 낙도로 이주하여, 그들의 공동체가 낙도 각지에 퍼지게 되었다. 금교령 폐지 후 잠복 기리시탄은 단계적으로 가톨릭으로 복귀하고, 취락이 바라보이는 언덕에 성당을 세움으로써 그들의 ‘잠복’은 끝을 맞이했다.

‘소토메의 시쓰 취락’은, 니시소노기 반도 서안에 해당하는 소토메 지역에 위치하며, 동중국해로 흘러 들어가는 시쓰강 유역에 있다. 잠복 기리시탄이 금교기 은밀하게 기도하기 위해서 성화상을 숨기고 있었던 저택터, 잠복 기리시탄의 묘지, 금교기 취락을 관할한 대관소터 및 쇼야[庄屋, 마을의 정사(政事)를 맡아보던 사람] 저택터, ‘신도 발견’ 후에 선교사가 상륙한 해변, 금교령 폐지 후 기도를 드린 ‘가설 성당터’와 성당으로 구성된다.
소토메 지역에서는 1571년 예수회 선교사 카브랄 일행의 선교 활동을 통해 그리스도교가 전해졌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1592년에는 소토메 북부의 고노우라 지구에 선교사의 주거로서 레지덴시아가 세워지는 등 선교가 진행됐다.
1614년 전국에 금교령이 발포되었지만, 시쓰 취락은 비교적으로 단속이 느슨한 사가 번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쇼야(庄屋)를 비롯한 마을 관리들도 잠복 기리시탄이었다. 잠복 기리시탄은, 표면상으로는 시쓰 대관소 관할 아래 불교사원에 소속되어있는 한편, 선교사를 대신한 공동체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해서 조직적으로 신앙을 지속했다.
시쓰 취락의 공동체는 ‘오초’라고 하는 금교 초기에 전해진 교회력을 소유한 복수의 작은 ‘조(組)’로 구성되어, 그들을 통괄하는 ‘지히사마’ (정, 부, 제자 3명으로 구성)라는 시쓰 취락 전체의 ‘조(組)’의 지도자를 임원회에서 선출했다. ‘지히사마’는 취락내의 세례, 장례식 등 의례를 담당하고 ‘성탄절’(크리스마스)에는 지히사마의 집에서 철야 기도를 드렸다.
또한 취락내에는 16세기 유럽에서 전해졌다고 여겨지는 성모 마리아를 본뜬 ‘무겐자이노푸라켓토 (원죄 없는 잉태를 본뜬 대형 청동메달)’를 비롯해, 중국 유래라고 추측되는 동으로 된 선인상을 예수회 창시자의 이냐시오 데 로욜라로 여긴 ‘이낫쇼사마’, 일본인이 그린 ‘성 미가엘’과 ‘쥬고겐기’ 등 복수의 성화상을 숨기고 은밀하게 숭상함으로써 신앙을 실천하였다. 그 외에도 시쓰 취락을 포함한 소토메 지역에 전해졌다고 생각되는 그림 ‘눈의 산타마리아’나, 원래 시쓰 취락에 있었지만 드로 신부를 통해서 프랑스로 건너갔다가, 최근 다시 나가사키로 돌아온 그림 ‘무원죄의 성모상’이 있다. 아울러 1603년에 편찬된 ‘곤치리산노랴쿠’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의 복사본 등 일본어 교리서도 전승되고 있었다. 시쓰 취락의 잠복 기리시탄은 기도 문구인 오라쇼를 구승하고, 일상적으로 각자가 소리없이 또는 작은 소리로 기도했다.
시쓰 취락 잠복 기리시탄의 무덤은 언뜻 보면 불교신자의 무덤과 구별이 안 되지만, 잠복 기리시탄을 매장할 때는 불교신자와 같은 ‘좌관(座棺)’이 아니라 무릎을 구부려서 재웠던 ‘침관(寢棺)’의 방식으로 머리를 남쪽을 향해서 매장했다. 또한 관내(棺內)에는 금교기 소토메 지역의 잠복 기리시탄들이 신성시한 동백나무의 조각도 껴묻어 있는 등 잠복 기리시탄 고유의 방법으로 매장되어 있었다.
금교기의 시쓰 취락에는 가옥, 경작지, 묘지를 하나의 단위로 한 취락구조가 보이고, 사람들은 경사면에 돌을 쌓아서 계단식 밭을 조성하여 고구마 재배를 중심으로 한 농업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 취락구조는 현재도 거의 변함 없이 남아 있다. 척박한 토지임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많았던 소토메 지역에서는, 고토 번과 오무라 번의 협정에 의해 18세기말부터 고토로 개척 이주가 시행되어 시쓰 취락도 그 거점의 하나가 되었다.
1865년에 오우라 천주당에서 선교사와 잠복 기리시탄이 만난 ‘신도 발견’을 계기로 각지의 잠복 기리시탄의 지도자가 은밀하게 오우라 천주당의 선교사와 접촉을 시작했다. 시쓰 취락 잠복 기리시탄의 지도자도 접촉하여 신앙을 고백하는 동시에 교리 지도를 받고, 선교사를 몰래 취락으로 불렀다. 오바마우라는 그 선교사가 처음으로 상륙한 곳이다.
시쓰 취락의 잠복 기리시탄은 최종적으로 16세기에 전해진 그리스도교인 가톨릭으로 복귀하는 사람과 금교기의 신앙 형태를 지속한 사람(가쿠레 기리시탄)으로 갈라지고, 전승해 온 성화상의 소유를 둘러싸는 대립으로까지 발전했다. 이것은 ‘노나카 소동’이라고 한다.
가톨릭으로 복귀한 잠복 기리시탄은 그리스도교 금교령이 폐지된 1873년에, 금교기에 숭상했던 성화상을 소유하고 있었던 기리시탄의 저택 옆에 ‘가설 성당’을 세웠다. 그 후 1882년에는 파리 외국 선교회의 선교사였던 드로 신부가 취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시쓰 성당을 세웠다. 그것은 시쓰 취락에서의 ‘잠복’이 끝을 맞이했음을 상징하고 있다. 시쓰 성당에는 바다에서 부는 강풍을 피하기 위해서 지붕과 천장이 낮으며, 1891년과 1909년의 증축에 따라 앞뒤로 두 개의 탑이 세워지는 등 외관에 특징이 있다.
드로 신부는 마을사람들의 가난한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서, 성당 근처에 직업보도시설인 시쓰 구조원(救助院)도 세웠다. 그곳은 금교기에 잠복 기리시탄을 취조한 대관소가 있었던 장소이기도 했다.
그리스도교의 금교령 폐지 직후, 시쓰 취락에서 가톨릭으로 복귀한 자들은 약 3,000명이었는데, 이에 비해 계속해서 금교기의 신앙을 실천한 가쿠레 기리시탄은 약 5,000명이었다. 그러나 그 후 가톨릭으로 귀의하는 사람들이 서서히 증가하여 20세기 중반에는 가톨릭 신자와 가쿠레 기리시탄의 비율은 거의 비슷해졌다. 현재는 가쿠레 기리시탄의 대부분은 불교신자 또는 가톨릭 신자로 이행하고 있다.

01_外海の出津集落
01_소토메의 시쓰 취락
01_外海の出津集落
02_無原罪のプラケット(長崎市ド・ロ神父記念館所蔵)_池田勉撮影
02_‘무겐자이노푸라켓토 (원죄 없는 잉태를 본뜬 대형 청동메달)’(나가사키시 드로신부 기념관 소장)_ 이케다 쓰토무 촬영
02_無原罪のプラケット(長崎市ド・ロ神父記念館所蔵)_池田勉撮影
03_イナッショさま(長崎市外海歴史民俗資料館所蔵)_池田勉撮影
03_이낫쇼사마(나가사키시 소토메 역사민속자료관 소장)_이케다 쓰토무 촬영
03_イナッショさま(長崎市外海歴史民俗資料館所蔵)_池田勉撮影
04_こんちりさんのりゃく(長崎市外海歴史民俗資料館所蔵)_池田勉撮影
04_곤치리산노랴쿠(나가사키시 소토메 역사민속자료관 소장)_이케다 쓰토무 촬영
04_こんちりさんのりゃく(長崎市外海歴史民俗資料館所蔵)_池田勉撮影
05_出津集落(19世紀後半から20世紀初頭に撮影)
05_시쓰 취락(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두에 촬영)
05_出津集落(19世紀後半から20世紀初頭に撮影)
06_野中集落_池田勉撮影
06_노나카 취락_이케다 쓰토무 촬영
06_野中集落_池田勉撮影
07_菖蒲田墓地_池田勉撮影
07_쇼부다 묘지_이케다 쓰토무 촬영
07_菖蒲田墓地_池田勉撮影
08_小濱浦_池田勉撮影
08_오바마우라_이케다 쓰토무 촬영
08_小濱浦_池田勉撮影
09_高台に建つ出津教会堂
09_언덕에 세워진 시쓰 성당
09_高台に建つ出津教会堂
10_低い屋根と天井の出津教会堂_日暮雄一
10_지붕과 천장이 낮은 시쓰 성당_히구라시 유이치 촬영
10_低い屋根と天井の出津教会堂_日暮雄一
11_前後にふたつの塔をもつ出津教会堂
11_앞뒤로 두 개의 탑이 있는 시쓰 성당
11_前後にふたつの塔をもつ出津教会堂
12_出津代官所跡に建つ旧出津救助院_日暮雄一撮影
12_시쓰 대관소터에 서있는 구 시쓰 구조원_히구라시 유이치 촬영
12_出津代官所跡に建つ旧出津救助院_日暮雄一撮影

기본정보

ガイドマップA ガイドマップ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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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명칭소재지문화재 종목문화재 지정연도
나가사키시 소토메의 돌을 쌓아 만든 취락 경관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국가 선정 중요문화적 경관2012년, 2018년(추가선정)
구 시쓰 구조원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니시시쓰마치국가 지정 중요 문화재2003년
시쓰 성당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니시시쓰마치국가 지정 중요 문화재2011년

오시는 길

시쓰 성당(나가사키와 아마쿠사 지방의 잠복 기리시탄 관련 유산 인포메이션센터)

※새 창이 열립니다. (‘교통편 참고도’를 참고해 주세요)

UNESCO